-넌 삐딱선을 제대로 타는구나.
흔히 대중들이 쫒아가는 길을
가지않는 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누군가의 말을 따라가길 원하는 것인지.
평범한 인간이 되길 원하는 것인지.
우리는 삐딱선이라는 것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버린다.

뭐 사실 그렇다.
생각해보면.
모두가 따라가는데, 혼자 따라가지 않으면
왠지 안될 것 같은 그런 부담감.
즉 군중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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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심리라는 것이 정말 무서운것이니까.
Yes라고 대답할때,
혼자서 No라고 대답할 용기는
모두가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왜 삐딱선이라 말할까.
모두가 쫒아가기 때문에?
올바른 길을 따라가지 않기 때문에?
그래.
간혹가다 나쁜일도 있다.
당연히 그렇다.
쫒아가야 할길에 따라가지 않는
일탈적 행위는 어찌보면 참으로 나쁘다.

하지만, 시각을 다르게 보자.
피사의 사탑을 제대로 보면, 비뚤어져있다.
그렇지만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탑은 더이상 비뚤어져 있지 않다.

삐딱선이라.
삐딱한 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우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대개 중앙선을 지키는 이들도
가끔은 자신들이 삐딱선을 타고 있다는 것을
모른척하고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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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사람.

2008/03/09 19:32
 좋은 사람?
 늘 언제나 난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다.
 -그 애? 좋은 애 잖아.

 그래.
 .
 .
 난 좋은 사람일까?


 문득 내 자신을 돌아본다.
 .
 .
 .
 .
 좋은사람.
 좋은사람이라.


 세상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말
 좋은사람.


 완전하지 않은 모습.
 나의 모습.
 마치 아직 조각되지 않은 원석.
 그래서 더욱 갈고 닦아야.
 좋은 사람의 틀에서 벗어나니까.

 나.
 .
 .
 .
 어떤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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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람들은 담을 하나씩 갖고 있다.
높지도, 그리 낮지도 않은 담을..

서로 서로 나는 털어놓고 산다지만,
삶은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낮은 담을 의식하고
더이상, 그에게 다가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사람의 개인의 사생활을 지켜주는 것이기도 하며,
나의 사생활을 지키기 위한것이기도 하다.
또 어찌보면 사람들의 무관심이기도 하다.

이런 낮은 담을 모두 허문이들이 있을까.
20살을 갓 넘은 나에게도, 낮은 장벽이 있는데,
하물며 어른들이야 없을리가 있을까.
가장 없을거라 생각되는 사람은 바로 어린이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서로에게 다가가는 시간 3분 만으로
누군가와 가까이 할 수 있다는것.
그것만으로도 담이란것은 어느새 생겨서, 어느새 단단히 굳어 버렸는지.
그건 알 수 없지만,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낮은 담.
다른이의 사생활을 지켜주기 위해,
무관심으로 생긴 낮은 담을, 허물어 볼까.
해맑은 아이들의 미소를 띄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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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마시면 마실수록, 묘한 기분이 든다.
왠지 가볍지않은 무게가 실리고
어떤 이야기라도 허용될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취중진담이라는게 가능한 것인가 보다.

술은 맛이없고, 안좋은 추억을 만들어서
어릴때는 정말 안좋은 기호식품이라 생각했는데
점점 접하게 되면서 술이란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가슴에 담아둔 것들,
그리고 무거운것이라도 받아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담배도 비슷하다.
왠지 무겁지만, 털어놓을 수 있는 그들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답답한것도, 즐거운것도, 받아줄 수 있는 공간.

가끔은 자신만의 공간에 갇혀 세상과는 동떨어져
어떤 범죄들을 저지르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공간이 있기에
답답한 어른들의 공간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이 만들어낸 것들은,
유용한것들, 좋지 않은 물건들이 많다.
그리고 필요악이라고 해서 나쁘지만 받아들여야 할것들이 있다.
점점 커가면서 없애려고 했던 것들이
점점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이 만든것들은 필요하지 않은게 없다.
그렇기에, 예전부터 있던 것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없어지지 않고 유지되는것이니까.

그렇기에
술은 없어질 수 없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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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행하는 가면 무도회,
얼굴이 밝혀지지 않아 상대를 더욱 알아보지 못하는 무도회다.
하지만, 실제로 가면은 사람을 더욱 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얼굴에 가려진 사람의 심리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해'로부터 시작하는 첫인상을 가려주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신경을 더 쓰게 된다.
그렇기에 가면무도회는 진정한 사람의 인간성을 보는 자리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가면무도회는 없지만,
집밖으로 나가면서 생기는 0.0001mm의 얇은 막이 생긴다.
그 막은 찢어지지도, 부서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마음이 상처를 받았다거나, 사랑에 푹 빠질때
자신도 모르게 없어지는 막이기도 하다.
그것은 가면이다. 현대인들의 가면.

과거에는 가면은 오로지, 딱 하나의 하나뿐이었는데
지금은, 가면을 자유자재로 바꾸게 되었다.
예전부터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온라인 네트워크는 사람들 간의 가면을 더욱더 질기게 만들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면을 수없이 바꿔가면서
얼굴이 공개되지 않으려고 애쓴다.
상처입지 않으려고, 무딘애를 쓰지만,
마음의 상처때문에 무너지는 사람도 있다.

현대인들의 가면은, 서로를 알기 위해서 생겼다기 보다는
자신을 숨겨서 서로 모르게 하려고 만든 위장술이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얇은 막으로 감싼 가면으로 감싸버린다.

유리가면처럼, 쉽게 깨지면서도 남에게 보이는 그런 막을 사용하면 안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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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가진 피를 보면, 4가지로 구분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 피로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정확한지,
단순히 인간의 성격중에 두르러진것을 콕 집어 놓아
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틀인지 명확하진 않다.

하지만, 대개 사람들은 그것으로 사람의 성격을 판단하며,
때로는 사람을 비하하거나 사람을 이해하는 도구로 이용한다.

이런 혈액형에 사람을 구분짓는다는것은 어찌보면
사람과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을 이어주는 도움다리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다른방면으로 보면 편견의 문이 될 수 있다.

태어날때 부터 갖는 이 사람의 피에 따라
성격이 구분된다는건 아무래도 신의 영역일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은듯하다.

실제로, 혈핵형이 바뀔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사람의 성격이 바뀌면 혈핵형 또한 바뀔수 있는 것인지도 모를일이다.

우리는 4가지 부류의 삶을 가진것이 아니기에,
혈핵형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도구는 어찌보면 재미삼아 보는 틀이다.

사주팔자가 100% 맞지 않는것처럼,
혈핵형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간단한 대화의 끈으로써 작용하는 것은 옳지만,
단순한 결정을 내리기엔 모자란 면이 크다.

그렇기에, 우리는 점점더 사람과 사람을 이해하려는데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진지한 대화이 아니라도 좋다.
단지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단 5초의 생각만으로,
혈핵형의 벽은 금새 무너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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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이란 경계는 가르기 쉽다.
사람이 아무런 정신적, 육체적인 활동이 멈춘 상태의 여부에따라.
사람의 생과, 사가 나뉘어진다.

죽음이라는건,
-정말 무섭다.
왜냐하면, 이 세상엔 살아있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이들에게 미지의 세계이며
두려운 장소이기 때문이며,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의 인연을 끊는 큰 행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과 사를 사이에두고 사는 사람들은,
생이란 즐거움을 느끼고,
죽음이란 슬픔을 느낀다.

삶과, 죽음은  인생의 처음과 끝에서 있는 것이라
그 사이의 격차는 멀지만, 사실 살면서 삶과 죽음은 멀리 있지 않는듯하다.
그것은, 삶이 있다면 죽음이 자연히 따라온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혀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삶과 죽음을 늘 붙어다니는 수식어지만,
가까이에서 있는 죽음마저도, 조용히지나치려고 한다.
그리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다고 생각은 하지않고,
근근히 살아가는것에 대해 한탄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기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리
죽음에 대해 슬퍼하지 않는다.

그래서 죽음은 우리곁에 멀리있는것으로 치부하려고 한다.

이렇게 보자면, 죽음이라는것은 그저 모든 육체적, 정신적인 활동의 멈춤이라기 보다는,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과의 단절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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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사람이야기를 올리고 싶었는데,
최근에 안타까운 소식이 들어와, 가슴이 아프다.

샘물교회에서 파견한 봉사원들은,
알고 있었겠지만, 그래도 도움이 될까 싶은 마음에 보내졌으리라 본다.
뭐, 국가적으로 손해가 끼쳤을지는 몰라도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앞서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닥칠 국가적 손해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선 국내외로 뒤숭숭한 이번 일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게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30번의 경고와, 전용기파견, 티켓 취소 그리고 루머설...
정확한 정보는 일반인들에게 전해지지 않았지마는,
정확한 답도 없기에,
가타부타 따져서 서로 싸우기 보다는 우선
한국정부에서 하는 처리방식의 경과를 확인하고,
피랍된 사람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는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정치가 있기전에 사람이 있는 곳,
그런 마음이 살아 숨쉬는 한국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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